충전하면서 통화하면 왜 더 답답할까 — 원인이 하나가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RF 개발자가 설명합니다)

충전기를 꽂은 채로 통화하면 어쩐지 더 답답한 날이 있습니다. 데이터가 느려지는 것 같기도 하고, 통화 중에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더 심해지기도 합니다.

기분 탓일 때도 있지만, 실제로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원인을 하나로 짚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원인이 하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먼저 흔한 오해부터

❌ “충전기가 불량이라서 그렇다”

불량이 아니어도 생깁니다. 충전기는 제 할 일을 정확히 하고 있는데도 그 일 자체가 통신에 영향을 줍니다. 물론 잡음 대책이 부실한 제품이면 더 심해집니다.

❌ “충전하면 폰이 느려지니까 그렇다”

열이 올라 성능이 내려가는 것도 이유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통화 잡음이 설명되지 않습니다. 다른 원인이 더 있습니다.

❌ “원인이 하나 있을 것이다”

이게 이 글에서 가장 바로잡고 싶은 오해입니다. 충전은 폰에 세 가지 일을 한꺼번에 시킵니다. 그리고 셋 다 통신에 걸립니다.

충전은 한 가지 일이 아닙니다

충전을 시작하면 전원이 크게 출렁이고, 긴 선이 하나 붙고, 열이 오르는 세 가지 일이 동시에 벌어지며 각각이 통신 성능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보여주는 개념도. 그리고 통화 중이면 RF도 반대 방향으로 나가는 양방향 관계임을 함께 표시했다
세 갈래가 각각 다른 방식으로 통신에 걸린다. 그리고 방향은 한쪽이 아니다.

① 전원이 크게 출렁입니다. 충전기는 전압을 그냥 흘려보내는 물건이 아닙니다. 빠르게 껐다 켰다를 반복해서 원하는 전압을 만들어냅니다. 그 껐다 켜는 동작이 곧 전원 라인의 출렁임입니다.

② 긴 선이 하나 붙습니다. 충전 케이블은 1m 안팎입니다. 지난 글에서 이어폰 줄 이야기를 했는데,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긴 선은 의도하지 않아도 안테나처럼 동작합니다. 밖의 잡음을 끌고 들어오고, 폰이 내보낸 신호를 주워 담습니다.

그런데 이 두 번째가 생각보다 큽니다. 선이 하는 일은 잡음을 주워 담는 것만이 아닙니다. 폰의 전기적 바닥을 바깥까지 끌고 나갑니다. 이게 왜 문제인지는 아래 심화 블록에서 자세히 풀겠습니다. 셋 중 무게가 가장 큰 갈래입니다.

③ 열이 오릅니다. 충전 자체가 열을 만들고, 통화하면 PA가 또 열을 만듭니다. 온도와 배터리 글에서 봤듯 폰은 뜨거워지면 스스로 성능을 낮춰서 열을 줄이려 합니다.

그리고 방향이 한쪽이 아닙니다. 통화 중이라면 폰은 신호를 내보내고 있고, 지지난 글에서 봤듯 폰 안에서 가장 센 신호는 폰 자신이 만듭니다. 그 신호가 충전 회로와 케이블 쪽으로 실립니다. 서로 주고받는 관계입니다.

이 세 갈래를 한꺼번에 놓고 봐야 원인이 잡힙니다. 부품 하나만 들여다보면 각각은 다 정상이기 때문입니다. 충전기도 정상, 케이블도 정상, 통신 부품도 정상인데 합쳐놓으면 나빠집니다.

📐 조금 더 깊이 알고 싶다면 — 왜 “어떤 충전기에서만” 그럴까 👉 클릭하면 펼쳐집니다

충전기가 껐다 켜는 속도는 통신에 쓰는 주파수보다 훨씬 느립니다. 그러니 서로 상관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상관이 생깁니다.

흔히 이렇게 설명합니다. 규칙적으로 껐다 켜는 신호는 그 주파수 하나만 만들지 않고 정수 배수마다 성분을 남기는데(이걸 하모닉이라고 합니다), 그중 하나가 하필 내 밴드 자리에 떨어진다고요. 배수가 서는 자리는 충전기마다 다르니 그럴듯한 설명입니다.

그런데 이건 개념을 그리기엔 깔끔해도, 실제 주범으로 지목하기엔 약합니다. 충전기가 껐다 켜는 속도는 대개 수백 kHz에서 수 MHz입니다. 폰이 쓰는 수백 MHz 이상에 닿으려면 배수를 수백 번 넘게 세야 하는데, 그렇게까지 멀리 간 성분은 세기가 이미 크게 떨어져 있습니다.

충전기가 통신을 흔드는 세 가지 경로를 무게 순으로 나타낸 막대그래프. 케이블이 폰의 접지를 밖으로 늘리는 경로와 전원이 흔들려 기준이 오염되는 경로가 크고, 배수 성분이 밴드를 직접 치는 경로는 통신 주파수까지 오면 이미 아주 약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 갈래의 무게는 다르다. 실제로 큰 쪽은 위의 둘이다.

실무에서 크게 작용하는 건 다른 두 가지입니다.

하나, 케이블이 폰의 바닥을 밖으로 끌고 나갑니다.

폰 안에서 모든 부품은 같은 바닥을 딛고 섭니다. 그 바닥이 흔들리지 않아야 각 부품이 제 일을 합니다. 그런데 케이블을 꽂으면 그 바닥이 선을 타고 충전기까지, 콘센트까지 늘어납니다. 폰 안에 갇혀 있어야 할 기준선이 바깥으로 나가는 셈입니다.

그러면 두 가지가 따라옵니다. 바깥의 출렁임이 그 늘어난 바닥을 타고 들어오고, 늘어난 바닥 자체가 안테나처럼 신호를 주고받습니다. 안테나 글에서 봤듯 낮은 대역에서는 기판 바닥이 신호를 내보내는 일에 함께 참여하는데, 그 바닥이 케이블로 연장되면 안테나가 놓인 환경 자체가 달라집니다.

둘, 전원이 흔들리면 기준이 흔들립니다.

폰 안에는 주파수를 정확하게 만들어내는 회로가 있습니다. 통신은 이 회로가 만든 기준에 맞춰 돌아갑니다. 그런데 여기 들어가는 전원이 출렁이면 만들어내는 주파수도 미세하게 흔들립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아주 높은 배수가 아니라 충전기가 만드는 그 출렁임 자체입니다. 기준이 흔들리면 받는 쪽에서 잡음 바닥이 올라가고, LNA 글에서 본 그대로 신호와 잡음의 비율이 나빠집니다.

이 둘 중 어느 쪽이 더 큰지는 폰과 충전기에 따라 갈립니다. 케이블이 길고 대책이 약하면 앞쪽이, 전원을 나눠 쓰는 방식이 헐거우면 뒤쪽이 앞섭니다. “이 충전기에서만 그렇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배수가 우연히 맞아떨어져서가 아니라, 그 충전기가 만드는 출렁임의 성격과 케이블의 조건이 제각각이기 때문입니다.

부품은 다 정상인데 폰이 나빠질 때

여기서부터가 제 일입니다.

밴드를 하나 더 넣는 일에서 부품 각각이 규격을 만족해도 합치면 안 나오는 경우가 있다고 했습니다. 충전 중 통화가 그 전형적인 예입니다.

충전 회로를 만든 쪽은 충전을 잘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통신 부품을 만든 쪽은 그 부품이 규격을 만족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둘 다 자기 일을 제대로 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판 위에 올라가고, 같은 전원을 쓰고, 같은 케이블에 매달리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아무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완성된 폰에서는 성능이 안 나옵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부품을 바꿔서 푸는 문제가 아닙니다. 어디서 어떻게 새는지를 찾아야 하고, 그러려면 충전이 도는 길과 통신이 도는 길을 같이 놓고 봐야 합니다. 전원을 어디서 가를지, 접지를 어디서 만나게 할지, 케이블이 들어오는 자리를 통신 부품에서 얼마나 떼어놓을지를 정하는 일입니다.

부품 하나하나를 아는 것보다, 그것들이 동시에 무슨 일을 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한 자리입니다.

📐 조금 더 깊이 알고 싶다면 — 없던 주파수가 생기는 또 하나의 경우 👉 클릭하면 펼쳐집니다

앞에서 본 하모닉은 신호 하나가 만드는 배수였습니다. 그런데 폰 안에는 신호가 하나만 있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두 신호가 함께 있으면 그 둘이 섞여 원래 없던 주파수가 새로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그중에는 필터로 잘라낼 수 없는 성분이 있습니다. 원래 신호 바로 옆에 붙어서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필터 글에서 본 기울기와 통행료의 맞바꿈이 발목을 잡습니다. 사후에 걸러내는 길이 막히니, 접근이 애초에 만들지 않는 쪽으로 바뀝니다.

이게 바로 다음 글의 주제입니다. 거기서 제대로 풀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1. 통화 품질이 중요한 순간이면 케이블을 잠깐 뺀다. 세 갈래 중 두 갈래가 한 번에 사라집니다. 전원 출렁임도, 긴 선도 없어집니다.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2. 특정 충전기에서만 그렇다면 그 충전기를 바꿔본다. 배수가 서는 자리가 제품마다 다릅니다. 다른 충전기에서는 멀쩡한 경우가 흔합니다.
  3. 인증 표시가 있는 제품을 쓴다. 잡음을 걸러내는 부품이 들어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실제로 있습니다. 값싼 제품에서 먼저 빠지는 것이 대개 그 부분입니다.
  4. 무선 충전 중이라면 더 그럴 수 있다. 무선 충전은 코일을 계속 껐다 켜서 자기장으로 전력을 넘깁니다. 앞에서 본 첫 번째 갈래가 유선보다 크게 일어나는 셈입니다. 게다가 전달 효율이 낮아 열도 더 납니다. 세 갈래 중 두 갈래가 함께 세지니, 통화 품질이 중요하면 잠깐 내려놓는 편이 낫습니다.
  5. 뜨거우면 케이스를 벗긴다. 세 번째 갈래인 은 이걸로 줄어듭니다. 충전과 통화가 겹치면 열이 두 배로 쌓입니다.

정리하면

충전하면서 통화할 때 답답해지는 이유는 하나가 아닙니다. 전원이 크게 출렁이고, 긴 선이 하나 붙고, 열이 오릅니다. 세 갈래가 각각 다른 방식으로 통신에 걸립니다. 그리고 통화 중이라면 폰이 내보낸 신호도 그쪽으로 실립니다.

“어떤 충전기에서만 그렇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껐다 켜는 동작이 만드는 잡음은 배수마다 줄줄이 서고, 그중 하나가 하필 내 밴드 자리에 떨어지면 나빠집니다.

이 문제가 어려운 건 아무도 잘못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충전기도, 케이블도, 통신 부품도 각자 규격을 만족합니다. 그런데 한 판 위에서 동시에 동작하면 성능이 안 나옵니다. 부품 하나를 깊이 아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고, 동시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한꺼번에 봐야 보입니다. 제가 12년째 서 있는 자리가 거기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오늘 심화 블록에서 살짝 꺼낸 이야기를 정면으로 다루겠습니다. 왜 하필 그 밴드 하나만 문제가 되는지, 그리고 폰이 어떻게 자기 자신을 방해하는지 설명하겠습니다.

궁금한 통신 현상이 있으시면 문의 페이지로 보내주세요. 좋은 질문은 그대로 다음 글이 됩니다.


글쓴이 | 전파쟁이
스마트폰의 RF 프론트엔드(RFFE)를 12년째 설계하고 있습니다. 안테나 뒤에 붙는 필터·PA·LNA 같은 부품을 고르고 회로를 설계해서, 부품과 모듈이 합쳐진 완성된 폰 상태에서 실제로 성능이 나오는지 확인하는 일입니다. 이 블로그는 소속 회사와 무관한 개인 공간이며, 3GPP 공개 표준과 직접 측정한 데이터를 근거로 씁니다. 블로그 소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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