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그 밴드 하나만 유독 안 터질까 — 폰이 자기 자신을 방해합니다 (RF 개발자가 설명합니다)

신호가 안 좋을 때는 대개 이유가 짐작이 갑니다. 멀거나, 벽에 막혔거나. 엘리베이터지하주차장이 그런 경우죠.

그런데 가끔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자리도 좋고 사람도 많지 않은데 유독 특정 상황에서만 신호가 툭툭 끊깁니다. 폰을 바꿔도, 통신사를 바꿔도 비슷한 조건에서 비슷한 증상이 반복됩니다.

이게 우연이 아닐 때가 있습니다. 밖에서 신호가 안 들어오는 게 아니라, 폰이 자기 자신을 방해하고 있는 경우입니다.

먼저 흔한 오해부터

❌ “그 주파수가 원래 약한 거다”

주파수(밴드) 자체가 약한 게 아닙니다. 그 밴드가 하필 다른 신호와 겹치는 자리에 있을 뿐입니다. 문제는 밴드가 아니라 겹침입니다.

❌ “밖에서 들어오는 간섭이다”

밖에서 오는 간섭도 있습니다. 하지만 더 성가신 건 폰이 자기 안에서 만든 신호입니다. 지난 글에서 말했듯, 폰 안에서 가장 센 신호는 폰 자신이 만듭니다. 그 신호가 엉뚱한 곳에서 말썽을 부립니다.

❌ “그냥 운이 없는 거다”

랜덤이 아닙니다. 여기엔 규칙이 있습니다. 없던 주파수는 아무 데나 생기지 않고, 정수 배 자리, 그리고 신호들이 섞여 생기는 정해진 자리에 나타납니다. 그래서 “하필 그 밴드”인 겁니다. 자리가 정해져 있으니까요.

폰이 자기 신호에 자기가 당한다

휴대폰은 신호를 보내는 일(Tx)과 받는 일(Rx)을 동시에 합니다. (이 구분은 신호의 길 글에서 정리했습니다.)

여기서 세기 차이가 엄청납니다. 내보내는 신호는 바로 옆 안테나에서 나오니 아주 셉니다. 반대로 받는 신호는 먼 길을 지나오며 2조 배에 이르게 줄어든 희미한 신호입니다. 한쪽은 고함이고 한쪽은 속삭임인 셈이죠.

폰이 내보내는 강한 송신 신호가 그 정수 배 자리마다 유령 신호(하모닉)를 만들고, 그중 하나가 하필 폰 안의 어떤 수신 자리에 떨어져 희미한 수신 신호를 덮어버리는 모습을 나타낸 개념도
강한 송신이 정수 배 자리에 유령 신호를 남긴다. 그중 하나가 하필 폰 안 어느 수신 자리에 떨어지면, 내 수신을 내가 덮는다.

문제는 그 고함이 깨끗하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강하게 밀어낸 신호는 PA 글에서 본 것처럼 파형이 조금 찌그러지고, 찌그러진 파형은 원래 없던 주파수 성분을 함께 만들어냅니다. 그 성분이 기본 주파수의 정수 배 자리에 줄줄이 섭니다. 이걸 하모닉이라고 부릅니다.

이 유령 신호가 아무 데나 있으면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하필 폰 안 어느 수신 자리에 떨어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고함의 찌꺼기가 속삭임을 덮어버리는 겁니다. 다른 밴드를 쓸 때는 멀쩡한데 그 밴드를 쓸 때만 유독 나빠지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어둘 것이 있습니다. 하모닉은 기본 주파수에서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 생깁니다. 그래서 실제로 더 자주 걸리는 상대는 통화용 수신이 아니라, 폰 안에 함께 들어 있는 다른 수신기입니다. 위치를 잡는 수신기나 무선랜 같은 것들이죠. 폰 하나에 수신기가 여러 개 들어 있으니, 배수가 서는 자리가 그중 누군가의 대역과 겹칠 여지도 그만큼 넓어집니다. 이 이야기는 사례가 뚜렷해서 따로 한 편으로 다루겠습니다.

📐 조금 더 깊이 알고 싶다면 — 하모닉은 왜 생기고, 필터로 왜 다 못 막나 👉 클릭하면 펼쳐집니다

하모닉이 생기는 뿌리는 스피커 지지직 글에서 본 것과 같습니다. 부품이 완전히 정직하게 반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입력을 두 배 넣었을 때 출력이 정확히 두 배가 아니라 살짝 치우치면, 그 어긋난 파형이 곧 없던 주파수 성분입니다. 그때는 소리(검파)로, 여기서는 정수 배 주파수(하모닉)로 나타날 뿐 원인은 하나입니다.

다행히 하모닉은 기본 주파수에서 멀리(두 배, 세 배) 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원칙적으로는 필터로 걸러낼 수 있고, 실제로 송신 경로에는 이 하모닉을 눌러주는 장치가 들어갑니다.

그 “장치”가 무엇이냐면, 대개는 PA가 담긴 모듈 안에 그 기능이 함께 설계돼 있습니다. 지도 글에서 봤듯 요즘 PA는 단품이 아니라 여러 부품이 한 덩어리로 묶인 모듈로 들어가는데, 하모닉을 눌러주는 일도 그 안에 이미 들어가 있는 겁니다. 그것만으로 부족한 자리에는 하모닉만 잡아내는 필터를 따로 답니다. 다만 필터를 하나 더 다는 건 앞서 본 통행료를 그만큼 더 무는 일이라, 꼭 필요한 곳에만 씁니다.

그런데 완전히 없앨 수는 없습니다. 눌러도 남는 찌꺼기가 있고, 그 찌꺼기가 하필 폰 안 다른 수신 자리에 떨어지면 문제가 됩니다. 받는 신호가 워낙 희미해서, 아주 작은 찌꺼기에도 묻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건 “필터를 더 세게 걸면 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어느 밴드와 어느 밴드가 이런 배수 관계로 엮이는지를 미리 따져 배치와 필터를 정하는 문제가 됩니다.

더 골치 아픈 경우 — 두 신호가 섞일 때

지금까지는 신호 하나가 만드는 유령이었습니다. 그런데 폰 안에 신호가 둘 이상 있으면, 더 까다로운 일이 벌어집니다.

두 개의 신호가 나란히 있을 때 상호변조로 생긴 새 성분이 원래 두 신호 바로 양옆에 딱 붙어 생기며, 이 성분은 밖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 부품 안에서 만들어지므로 앞단 필터로 막을 수 없고 뒤에서 잘라내려 해도 원 신호까지 함께 잘린다는 것을 나타낸 개념도
이 성분은 밖에서 들어온 게 아니라 부품 안에서 생긴다. 게다가 원 신호 바로 옆이라, 잘라내면 내 신호까지 잘린다.

서로 다른 두 신호가 함께 있으면, 그 둘이 섞여 합과 차를 비롯한 여러 새 주파수가 생깁니다. 이걸 상호변조라고 합니다. 그중 특히 성가신 것이, 한쪽 신호의 두 배에서 다른 쪽을 뺀 자리(2f1−f2)에 생기는 성분입니다.

왜 성가시냐면, 이건 필터로 잘라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유가 두 겹입니다.

하나는 생긴 자리입니다. 이 성분은 밖에서 들어온 게 아니라, 부품을 지나는 순간 그 안에서 새로 만들어집니다. 그러니 그 부품 앞에 아무리 좋은 필터를 둬도 소용이 없습니다. 막아야 할 것이 필터 뒤에서 생기니까요.

다른 하나는 생긴 위치입니다. 그렇다고 부품 뒤에 필터를 붙여도 안 됩니다. 이 성분은 원래 신호 바로 옆에 딱 붙어서 나타나기 때문에, 잘라내려 하면 내 신호까지 같이 잘립니다. 하모닉은 멀리 있어 잘라낼 수 있었지만 이건 그렇지 않습니다. 필터 글에서 본 기울기와 통행료의 맞바꿈이 여기서 발목을 잡습니다.

그래서 이건 걸러내는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만들지 않는 문제가 됩니다.

📐 조금 더 깊이 알고 싶다면 — 걸러낼 수 없다면 어떻게 하나 👉 클릭하면 펼쳐집니다

본문에서 본 두 겹의 이유 가운데 더 근본적인 쪽은 앞의 것입니다. 위치가 가깝다는 건 “더 좋은 필터를 쓰면 되지 않나”라는 반문을 남기지만, 생성 지점이 필터 뒤라는 건 그 반문 자체를 닫아버립니다. 사후에 걸러내는 길이 원리적으로 막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접근이 반대가 됩니다. 걸러내는 게 아니라, 애초에 만들지 않는 쪽으로 갑니다. 상호변조는 두 신호가 함께, 그것도 세게 있을 때 커지므로, 어느 신호와 어느 신호를 같이 켤 것인지, 켠다면 각각 어디까지 세게 낼 것인지를 미리 정해둡니다.

여기서 다시 출력 줄다리기가 등장합니다. 한 밴드를 위해 출력을 올리면 상호변조가 커져 다른 밴드 수신을 해칩니다. 조절 손잡이는 가운데 한 곳뿐인데 요구는 밴드마다 다르게 옵니다. 이걸 어디에 맞출지 정하는 게 제 일의 상당 부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솔직히 말하면, 이 문제는 대부분 폰 안에서 이미 관리되고 있습니다. 사용자가 손댈 여지가 크지 않다는 게 정직한 답입니다. 그래도 몇 가지는 도움이 됩니다.

  1. 특정 기능을 동시에 켤 때만 그렇다면, 그 조합을 잠깐 피해본다. 예를 들어 핫스팟을 켜둔 채 통화가 유독 나쁘다면, 통화 중엔 핫스팟을 꺼보는 식입니다. 여러 신호가 겹칠 때 상호변조가 커지니까요.
  2.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미뤄두지 않는다. 어떤 밴드 조합에서 문제가 확인되면, 그 조합을 피하거나 세기를 조정하도록 업데이트로 손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3. 신호가 약한 곳에서 속도가 덜 나오는 건 자연스럽다. 여러 밴드를 붙여 쓰려면 각 밴드가 어느 정도 받쳐줘야 하는데, 약한 곳에서는 일부러 조합을 줄이기도 합니다. 고장이 아닙니다.
  4. “이 폰만 그렇다”고 단정하기 전에 자리와 상황을 바꿔본다. 같은 증상이 특정 조건에서만 반복되는지 확인하면, 그게 겹침 문제인지 아닌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다른 데는 멀쩡한데 유독 그 밴드 하나만 나쁠 때, 범인은 밖이 아니라 폰 자신일 때가 있습니다. 강하게 내보낸 신호가 정수 배 자리(하모닉)에, 혹은 두 신호가 섞여 바로 옆자리(상호변조)에 없던 주파수를 만들고, 그게 하필 내가 받으려는 밴드에 떨어지는 겁니다.

자리가 정해져 있으니 “하필 그 밴드”인 것이고, 그래서 이건 운의 문제가 아니라 미리 따져서 막는 문제입니다. 어느 밴드끼리 이런 관계로 엮이는지 짚어내고, 배치와 필터와 출력을 그에 맞춰 정하는 일. 부품 하나를 깊이 아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고, 폰 전체에서 신호들이 동시에 무슨 짓을 하는지 봐야 보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걸 한 발 더 밀어보겠습니다. 요즘 폰은 여러 밴드를 일부러 동시에 씁니다. 빠른 데이터를 위해서죠. 그런데 동시에 쓸수록 서로 방해할 통로도 늘어납니다. 그걸 어떻게 관리하는지를 다뤄보겠습니다.

궁금한 통신 현상이 있으시면 문의 페이지로 보내주세요. 좋은 질문은 그대로 다음 글이 됩니다.


글쓴이 | 전파쟁이
스마트폰의 RF 프론트엔드(RFFE)를 12년째 설계하고 있습니다. 안테나 뒤에 붙는 필터·PA·LNA 같은 부품을 고르고 회로를 설계해서, 부품과 모듈이 합쳐진 완성된 폰 상태에서 실제로 성능이 나오는지 확인하는 일입니다. 이 블로그는 소속 회사와 무관한 개인 공간이며, 3GPP 공개 표준과 직접 측정한 데이터를 근거로 씁니다. 블로그 소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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