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안에서 신호는 어떤 길을 지나갈까 (RF 개발자가 그린 전체 지도)

이 블로그에서 지금까지 엘리베이터, 폰마다 다른 신호, 손으로 쥐는 문제를 다뤘습니다. 그때마다 PA, LNA, 필터 같은 부품 이름이 나왔습니다.

오늘은 그 부품들을 한 장의 지도 위에 늘어놓으려고 합니다. 안테나로 들어온 전파가 화면 속 영상이 되기까지, 폰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요.

이 지도가 머릿속에 들어오면 “왜 여기선 안 터지지” 같은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제가 12년 동안 매일 들여다보는 구간이기도 합니다.

먼저 흔한 오해부터

❌ “안테나 성능이 전부다”

안테나는 출입구일 뿐입니다. 문이 아무리 넓어도 그 뒤 통로가 좁으면 소용없습니다. 실제로 안테나가 받아낸 신호를 얼마나 안 잃고 뒤로 전달하느냐가 체감 성능을 크게 좌우합니다.

❌ “통신은 칩 하나가 다 처리한다”

“통신 칩”이라는 말 때문에 생기는 오해입니다. 실제로는 역할이 완전히 다른 부품 여러 개가 줄줄이 이어져 있습니다. 힘을 싣는 부품, 골라내는 부품, 살려내는 부품, 번역하는 부품이 각각 따로 있습니다.

❌ “좋은 부품만 사다 붙이면 된다”

부품은 시장에서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부품들 사이를 잇는 길은 살 수 없습니다. 폰마다 신호가 다른 글에서 다뤘듯, 같은 부품을 써도 결과가 갈리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지도 한 장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휴대폰 안 신호 경로 개념도. 안테나에서 들어온 신호가 듀플렉서에서 송신 길과 수신 길로 갈라져 각각 PA와 LNA를 지나고, 다시 트랜시버에서 합쳐져 모뎀으로 이어지는 구조. 듀플렉서부터 PA와 LNA까지를 한 모듈로 묶은 범위가 함께 표시되어 있다
안테나와 모뎀 사이. 내보내는 길과 받는 길은 서로 다른 부품을 지난다.

핵심은 길이 두 갈래라는 점입니다. 내보낼 때 지나는 길과 받을 때 지나는 길이 다릅니다. 요구 조건이 정반대이기 때문인데, 이유는 잠시 뒤에 설명하겠습니다.

먼저 각 부품이 하는 일을 하나씩 보겠습니다.

안테나 — 전파가 드나드는 문

공기 중의 전파를 전선 위의 전기 신호로 바꿔주는 경계입니다. 반대로 내보낼 때는 전기 신호를 전파로 띄웁니다. 요즘 폰에는 이 문이 여러 개 달려 있습니다. 하나가 손에 가려져도 다른 하나가 받도록요.

여기서부터는 현장에서 쓰는 말을 조금 쓰겠습니다. 내보내는 쪽을 Tx(송신, Transmit), 받는 쪽을 Rx(수신, Receive)라고 부릅니다. 위 지도에서 갈라지는 두 갈래가 각각 Tx 경로Rx 경로입니다.

듀플렉서 — 한 안테나에 섞여 있는 두 신호를 갈라놓는 갈림목

안테나는 하나인데 신호는 두 종류입니다. 내가 내보내는 신호내가 받아야 할 신호가 같은 문을 통해 드나듭니다.

이 둘을 갈라놓는 게 듀플렉서입니다. 안테나에서 들어온 것 중 받을 신호만 골라 Rx 경로로 보내고, PA가 만들어낸 신호는 Tx 경로에서 안테나로 내보냅니다. 위 지도에서 이 부품을 지나며 길이 두 갈래로 벌어지는 게 바로 이 일입니다.

갈라놓는 방법은 필터입니다. 정확히는 필터 한 쌍이죠. Tx 주파수만 통과시키는 필터와 Rx 주파수만 통과시키는 필터를 나란히 두면, 각 신호는 자기가 지나갈 수 있는 쪽으로만 흐릅니다. 문을 두 개 만들어놓고 각 문이 정해진 손님만 통과시키는 셈입니다. 양쪽이 동시에 주고받을 수 있게 해준다는 뜻에서 듀플렉서(duplexer)라고 부릅니다.

듀플렉서의 진짜 어려운 일 — 새어 나가지 않게 하기

그런데 이 부품의 진짜 과제는 길을 나누는 것 자체가 아닙니다. 나눈 뒤에도 새어 나가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Tx 신호는 대단히 강합니다. 반대로 Rx 신호는 대단히 약합니다. 뒤에서 숫자로 보여드리겠지만, 그 차이가 상상을 넘습니다. 이 둘이 같은 안테나에 물려 있으니, Tx가 조금만 Rx 쪽으로 새어도 받아야 할 신호가 그 밑에 완전히 묻혀버립니다.

그래서 듀플렉서의 필터는 자기 주파수를 잘 통과시키는 것보다, 상대편 주파수를 얼마나 확실히 막아내느냐로 평가됩니다. 통화하면서 내 목소리에 상대 목소리가 안 묻히는 건, 이 부품이 그 사이를 갈라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막는 힘과 통과시키는 손실

이 부품을 평가하는 지표가 두 개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둘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하나는 격리도(isolation)입니다. Tx 신호가 Rx 쪽으로 얼마나 안 새는지를 나타냅니다. 값이 클수록 잘 막는다는 뜻이고, 부족하면 내 송신 신호가 내 수신단을 먹통으로 만듭니다. 보통 50dB대 수준을 확보합니다.

다른 하나는 삽입손실(IL, Insertion Loss)입니다. 이 부품을 지나가는 것만으로 신호가 얼마나 줄어드는지를 나타냅니다. 듀플렉서는 스스로 신호를 키우지 못하고 지날 때마다 조금씩 깎기만 하는데, 그 깎이는 양이 IL입니다. 대역과 부품에 따라 대략 1~2dB대이고, 값이 작을수록 좋습니다.

문제는 둘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없다는 점입니다. 더 확실히 막으려고 필터를 날카롭게 만들면 통과 손실이 늘고, 손실을 줄이려고 완만하게 만들면 막는 힘이 떨어집니다. 어느 쪽으로 얼마나 치우칠지를 밴드마다 정하는 것이 부품을 고르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1~2dB는 그냥 사라지지 않습니다. Tx 쪽에서 잃은 만큼은 PA가 더 일해서 메워야 하니 배터리와 열로 돌아오고, Rx 쪽에서 잃은 만큼은 그대로 감도 손해로 남습니다. 왜 그런지는 뒤에서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부품을 고르면 끝일까 — 여기서 제 일이 시작됩니다

격리도가 좋은 부품을 골랐다고 끝이 아닙니다. 그 성능이 실제 기판 위에서 그대로 나오느냐는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부품 안에서 Tx와 Rx를 아무리 잘 갈라놔도, 기판에서 두 신호선이 가까이 붙어 있으면 거기서 다시 새어 넘어갑니다. 부품이 막아놓은 것을 배선이 도로 이어주는 셈입니다.

그래서 회로를 기판 위에 실제로 그리는 작업, 이른바 아트웍에서 Tx 선과 Rx 선을 최대한 떨어뜨립니다. 저는 이 작업에서 이 부분을 가장 신경 써서 봅니다. 두 선이 나란히 가는 구간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거기서 격리도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평면에서 떨어뜨리는 것만으로도 부족합니다. 요즘 폰 기판은 10층, 12층으로 쌓여 있어서, 층과 층 사이 간격까지 따져야 합니다. 평면에서는 멀리 떨어져 보여도 위아래로 겹쳐 지나가면 그대로 새기 때문입니다. 옆방 소리는 안 들려도 위층 발소리는 들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어느 층에 Tx를 깔고 어느 층에 Rx를 깔지, 그 사이에 무엇을 끼워 넣을지를 층 단위로 설계합니다. 같은 부품을 쓰고도 폰마다 성능이 갈리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부품은 살 수 있어도 그 사이를 잇는 길은 살 수 없다는 이야기가 이것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실제로는 안테나와 듀플렉서 사이에 스위치가 하나 더 있습니다. 폰은 밴드마다 다른 듀플렉서를 쓰는데, 지금 쓰는 밴드의 듀플렉서로 길을 이어주는 게 이 스위치입니다. 스위치가 어느 밴드를 쓸지 고르고, 듀플렉서가 그 밴드 안에서 Tx와 Rx를 가르는 셈입니다. 위 지도에서는 흐름을 보기 쉽게 생략했지만, 뒤에서 이야기할 앞단 손실에서는 이 부품도 제 몫을 차지합니다.

PA — 힘을 싣는 확성기

내보낼 신호를 실제로 멀리 갈 수 있는 세기까지 키웁니다. 전력 증폭기(Power Amplifier)의 약자입니다. 배터리에서 전기를 끌어다 쓰기 때문에, 폰에서 통신 관련 전력을 가장 많이 먹고 열도 가장 많이 냅니다. 신호가 약한 곳에서 배터리가 빨리 닳는 이유가 바로 이 부품입니다.

LNA — 속삭임을 살려내는 귀

받은 신호는 믿기 힘들 만큼 약합니다. 이걸 키워야 하는데, 그냥 키우면 잡음까지 같이 커집니다. LNA(저잡음 증폭기)는 잡음을 최대한 안 보태면서 신호만 키우는 부품입니다. 여기서 낀 잡음은 뒤에서 되돌릴 수 없습니다.

트랜시버 — 전파와 데이터 사이의 통역

여기까지 온 신호는 아직 높은 주파수의 파형입니다. 트랜시버는 이걸 모뎀이 알아들을 수 있는 형태로 번역합니다. 내보낼 때는 반대 방향으로 번역하고요.

모뎀 — 뜻을 읽어내는 두뇌

번역된 신호에서 실제 데이터를 해석합니다. 여기서부터는 통신 규격의 세계입니다. 이 글의 지도는 모뎀 앞에서 끝납니다. 안테나 뒤부터 모뎀 앞까지, 이 구간을 RF 프론트엔드(RFFE)라고 부릅니다. 제가 하는 일이 정확히 여기입니다.

📐 조금 더 깊이 알고 싶다면 — 가르는 방법이 밴드마다 다르다 👉 클릭하면 펼쳐집니다

앞에서 듀플렉서가 필터 한 쌍으로 송신과 수신을 가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방법이 모든 밴드에 통하는 건 아닙니다. 가르는 방식이 두 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주파수로 가르는 방식(FDD)은 내보내는 주파수와 받는 주파수를 아예 다르게 씁니다. 주파수가 다르니 필터로 갈라낼 수 있고, 그래서 동시에 말하고 들을 수 있습니다. 전화 통화처럼 양쪽이 동시에 말해도 되는 방식입니다. 듀플렉서가 일하는 곳이 여기입니다.

시간으로 가르는 방식(TDD)은 사정이 다릅니다. 이쪽은 같은 주파수를 쓰면서 말할 때와 들을 때를 시간으로 번갈아 합니다. 무전기와 비슷하죠.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주파수가 같으니 필터로는 가를 수가 없습니다. 통과시킬 기준이 되는 주파수 차이가 아예 없으니까요. 그래서 TDD 밴드는 반드시 스위치로 송신과 수신을 나눕니다. 지금은 내보내는 쪽, 지금은 받는 쪽으로 방향 자체를 빠르게 바꿔주는 것입니다. 5G에서 널리 쓰는 3.5GHz 대역이 이 방식입니다.

물론 TDD에도 필터는 들어갑니다. 다만 그 필터가 하는 일은 밴드를 골라내는 것이지, Tx와 Rx를 가르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밴드와 대역 밖 신호는 여전히 막아야 하니까요.

정리하면 Tx와 Rx를 가르는 일은 FDD는 필터로, TDD는 스위치로 합니다. 폰은 두 방식의 밴드를 모두 쓰니 양쪽 부품이 다 들어갑니다.

게다가 폰이 쓰는 밴드는 한둘이 아닙니다. 밴드마다 듀플렉서와 필터가 따로 필요하니, 이 부품들이 수십 개 단위로 들어갑니다.

낱개로 붙이면 기판에 자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업계는 부품을 점점 한 통에 몰아넣는 방향으로 왔습니다. 순서가 이렇습니다.

  • FEMiD — 듀플렉서와 스위치를 한 통에 담은 것
  • PAMiD — 거기에 PA까지 넣은 것
  • L-PAMiD — 거기에 LNA까지 넣은 것. 위 그림의 점선 범위가 통째로 하나의 부품이 됩니다

부품 개수가 줄고 자리도 아끼지만, 대신 안을 들여다보고 손볼 여지가 줄어듭니다. 통합도가 높아질수록 설계자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좁아지고, 어느 모듈을 고르느냐가 그 폰의 통신 성능을 상당 부분 결정하게 됩니다. 부품 선정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왜 이렇게 복잡해야 할까

부품이 이렇게 많은 이유는 하나로 요약됩니다. 폰이 하는 일이 물리적으로 무리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듀플렉서가 막아내야 한다고 했던 그 차이를, 이제 숫자로 보겠습니다.

휴대폰이 내보내는 최대 송신 신호 23dBm과 약한 곳에서 받는 신호 -100dBm의 크기를 비교한 막대 그래프. 두 신호의 차이는 123dB로 약 2조 배에 이른다
내보내는 신호와 받아야 할 신호의 크기 차이. 폰은 이 둘을 동시에 다룬다.

휴대폰이 내보낼 수 있는 최대 세기는 규격상 23dBm이 기준입니다. 반면 신호가 약한 곳에서 받아야 하는 신호는 -100dBm 안팎까지 내려갑니다.

차이가 123dB입니다. dB는 앞선 글에서 설명했듯 조금만 커져도 실제 차이는 훌쩍 벌어지는 단위입니다. 10dB면 10배, 20dB면 100배, 30dB면 1000배 식으로 열 배씩 뜁니다. 그러니 120dB면 0이 열두 개, 약 1조 배입니다. 여기에 3dB가 더 붙으니 그 두 배, 약 2조 배가 됩니다.

비유하자면 목이 터져라 소리치면서, 동시에 저 멀리서 들려오는 모기 날갯짓 소리를 알아들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것도 손바닥만 한 공간 안에서요.

앞서 듀플렉서가 상대편 주파수를 얼마나 확실히 막아내느냐로 평가된다고 한 이유가 이것입니다. 막아내야 할 것이 내가 내는 2조 배 큰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차이를 듀플렉서 혼자 감당하지는 않습니다. 앞서 본 격리도 50dB대는 첫 관문이고, 나머지는 Tx와 Rx가 쓰는 주파수를 얼마나 떨어뜨려 놓았는지, 뒤따르는 부품들이 큰 신호가 섞여 들어와도 얼마나 견디는지가 함께 나눠 집니다. 폰 전체가 여러 겹으로 막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도 내 목소리가 내 귀로 새어 들어가는 것만 막아도 절반은 해결되는 문제입니다. 그 첫 겹을 듀플렉서가 맡습니다.

📐 조금 더 깊이 알고 싶다면 — 왜 안테나 쪽 손실이 유독 치명적일까 👉 클릭하면 펼쳐집니다

신호는 이 길을 지나며 조금씩 잃습니다. 스위치를 지나며 조금, 필터를 지나며 조금, 배선을 지나며 조금씩요. 그런데 같은 크기의 손실이라도 어디서 생기느냐에 따라 타격이 전혀 다릅니다.

받는 쪽을 보겠습니다. 안테나에서 LNA까지 오는 길에서 1dB를 잃으면, 폰 전체의 수신 감도가 그대로 1dB 나빠집니다. 왜냐하면 그 손실은 신호만 줄이는 게 아니라 신호 대 잡음 비율 자체를 깎기 때문입니다. 이미 나빠진 비율은 뒤에서 아무리 좋은 증폭기를 써도 회복되지 않습니다. 흐려진 사진을 나중에 확대해봐야 흐린 채로 커지는 것과 같습니다.

반대로 LNA를 지난 뒤의 손실은 상대적으로 덜 아픕니다. 이미 신호가 충분히 커져 있어서, 뒷단에서 조금 잃거나 잡음이 끼어도 전체 비율에는 큰 영향이 없습니다.

그래서 설계에서 가장 신경 쓰는 구간이 안테나에서 LNA까지의 짧은 구간입니다. 배선을 얼마나 짧게 뽑을지, 어떤 부품을 몇 개나 거치게 할지, 부품을 기판 어디에 놓을지를 두고 0.1dB 단위로 다툽니다. 밖에서 보면 사소해 보이지만, 이 구간에서 벌어놓은 여유가 지하 주차장에서 통화가 되느냐 마느냐로 나타납니다.

앞에서 본 듀플렉서의 삽입손실 1~2dB가 바로 이 예산에서 나갑니다. 0.1dB를 아끼려고 다투는 구간에서 한 부품이 1dB 넘게 가져가는 겁니다. 그런데 그 부품을 뺄 수는 없습니다. 없으면 Tx가 Rx를 덮어버리니까요. 반드시 치러야 하는 비용을 최소한으로 깎는 것, 그게 부품 선정과 아트웍이 하는 일입니다.

내보내는 쪽도 비슷한 셈법이 있습니다. PA 뒤에서 잃는 신호는 배터리로 메워야 합니다. 길에서 1dB를 잃으면 그만큼 PA가 더 세게 일해야 하고, 그건 곧 전력과 열입니다.

그래서 실무에서는 안테나 사정에 따라 출력을 조금씩 다르게 잡습니다. 규격상 기준은 23dBm이지만 허용 오차가 정해져 있어서, 안테나 효율이 아쉬운 대역에서는 그 범위 안에서 조금 더 올려 잡기도 합니다. 특히 낮은 주파수 대역이 그렇습니다. 파장이 길어 안테나를 충분한 크기로 만들기 어려운데, 폰이라는 좁은 공간에서는 더욱 그렇기 때문입니다.

결국 안테나에서 못 번 것을 PA에서 메우는 셈입니다. 대신 그만큼 배터리를 더 쓰고 더 뜨거워집니다. 이 균형을 밴드마다 맞추는 게 제 일의 상당 부분입니다.

다만 이 메우기에는 분명한 상한이 있습니다. 규격이 정한 허용 범위만이 아니라 인체 노출 기준도 함께 상한을 정하기 때문입니다. 얼마든지 올려 잡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이 방법은 내보내는 쪽에서만 통합니다. 받는 쪽에는 메울 수단이 없습니다. 안테나가 잘 못 받아온 신호는 그대로 감도 손해로 남습니다. 앞에서 잃은 건 뒤에서 되살릴 수 없다는 이야기가 여기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안테나가 중요한 이유가 이 비대칭에 있습니다.

이 지도를 알면 보이는 것들

일상에서 겪는 통신 현상 대부분은 이 지도 위의 어느 한 지점에서 벌어집니다. 지금까지 다룬 글들을 지도 위에 얹어보면 이렇습니다.

  1. 배터리가 유독 빨리 닳는다 → PA가 출력을 올리며 전력을 더 씁니다. (온도와 배터리 글)
  2. 같은 자리인데 폰마다 다르다 → 안테나 배치와 앞단 손실 설계가 기종마다 다릅니다. (폰마다 신호가 다른 이유)
  3. 손으로 쥐면 나빠진다 → 지도의 맨 앞, 안테나에서 손실이 생깁니다. (손으로 쥐면 신호가 나빠지는 이유)
  4. 지하에서 안 터진다 → 안테나에 도착하는 신호 자체가 너무 약합니다. 폰이 아무리 좋아도 없는 신호는 못 만듭니다. (지하주차장 글)
  5. 해외 직구폰이 국내에서 안 된다 → 듀플렉서와 PA가 국내에서 쓰는 주파수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이건 소프트웨어로 못 고칩니다.

다섯 번째가 특히 그렇습니다. 듀플렉서 안의 필터는 물리적으로 특정 주파수에 맞춰 만들어진 부품이라, 지원하지 않는 주파수는 아예 통과시키지 못합니다. 그 밴드를 쓰려면 해당 부품이 폰 안에 실제로 들어 있어야 합니다. 업데이트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정리하면

휴대폰 안에서 신호는 안테나 → 듀플렉서 → PA 또는 LNA → 트랜시버 → 모뎀 순서로 지나갑니다. 내보낼 때는 PA가 힘을 싣고, 받을 때는 LNA가 약한 신호를 살려냅니다. 두 길이 갈라져 있는 건 내 신호와 상대 신호의 크기가 2조 배나 차이나기 때문입니다.

이 구간이 RF 프론트엔드입니다. 통신 규격이 정해준 성능을 실제 손에 쥔 폰에서 뽑아내는 자리이고, 잘 만든 폰과 아쉬운 폰이 갈리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이 지도의 부품을 하나씩 자세히 다뤄보겠습니다. 다음 글은 PA입니다. 폰에서 가장 뜨겁고 가장 배고픈 부품이 왜 그렇게까지 일해야 하는지, 그리고 왜 출력을 무작정 올릴 수 없는지를 이야기하겠습니다.

궁금한 통신 현상이 있으시면 문의 페이지로 보내주세요. 좋은 질문은 그대로 다음 글이 됩니다.


글쓴이 | 전파쟁이
스마트폰의 RF 프론트엔드(RFFE)를 12년째 설계하고 있습니다. 안테나 뒤에 붙는 PA·LNA·트랜시버 같은 부품을 고르고 회로를 설계해서, 완성된 휴대폰 상태에서 실제로 잘 터지게 만드는 일입니다. 이 블로그는 소속 회사와 무관한 개인 공간이며, 3GPP 공개 표준과 직접 측정한 데이터를 근거로 씁니다. 블로그 소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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