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하면서 내비를 켜면 왜 위치가 헤맬까 — GPS와 디센스 (RF 개발자가 설명합니다)

운전 중 통화를 하면서 내비를 켜면, 이상하게 위치가 튀거나 길 안내가 한 박자 늦을 때가 있습니다. 통화를 끊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해지고요.

기분 탓이 아닙니다. 내 폰의 통화 송신이 GPS 수신을 방해하는 경우가 실제로 있습니다. 지난 글에서 다룬 디센스의 대표적인 사례죠. 왜 하필 GPS가 통화에 약한지, 그리고 이걸 어떻게 잡는지 풀어보겠습니다.

먼저 흔한 오해부터

❌ “GPS는 위성 신호라 폰 통신과 상관없다”

신호의 출처는 다르지만, 둘 다 한 폰 안에 있습니다. 폰이 내보내는 강한 통화 신호가, 폰이 받으려는 약한 GPS 신호를 덮을 수 있습니다. 출처가 달라도 한 몸 안에서 부딪히는 겁니다.

❌ “하늘만 트이면 GPS는 정확하다”

하늘이 트이는 건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GPS 신호는 2만 킬로미터 밖 위성에서 오는 극도로 약한 신호라, 폰 안의 작은 방해에도 쉽게 묻힙니다. 밖이 트여도 안이 시끄러우면 헤맵니다.

❌ “내비가 헤매는 건 지도 앱 문제다”

앱 이전에 GPS 수신 자체가 나빠졌을 수 있습니다. 앱은 받은 위치가 부정확하면 헤맬 수밖에 없으니까요. 통화 중에만 그렇다면 앱이 아니라 수신 방해를 의심해야 합니다.

내 송신의 2배가 GPS 자리에 떨어진다

폰이 낮은 대역으로 통화 신호를 내보낼 때 그 주파수의 2배가 GPS가 쓰는 주파수 자리에 거의 정확히 떨어져서, 위성에서 오는 약한 GPS 신호를 덮어버리는 상황을 나타낸 개념도
낮은 대역 송신의 2배가 하필 GPS 주파수 자리에 떨어진다. 약한 위성 신호가 묻힌다.

하모닉 글에서 봤듯, 강하게 내보낸 신호는 정수 배 자리에 유령 신호를 남깁니다. 2배, 3배 자리에요. 문제는 그 배수 중 하나가 하필 GPS가 쓰는 주파수에 떨어질 때입니다.

공교로운 조합이 있습니다. 낮은 대역이라고 다 그런 건 아니고, 그중 폰이 내보내는 쪽(상향)이 787메가헤르츠 근처인 자리가 문제입니다. 그 2배가 1575메가헤르츠, 바로 GPS가 쓰는 주파수거든요. 우연이라기엔 너무 정확히 겹칩니다. 그래서 이 대역으로 통화하며 내비를 켜면, 내 송신의 2배 유령이 위성에서 온 약한 신호를 덮어 위치가 흔들립니다. 물론 어느 밴드가 범인인지는 상황마다 다르지만, 이 조합은 특히 잦은 골칫거리입니다.

여기서 GPS가 유독 취약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GPS 신호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약합니다. 내 폰이 바로 옆에서 내보내는 통화 신호가 귀청을 찢는 고함이라면, GPS는 지구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속삭임보다도 희미한 소리입니다. 고함의 찌꺼기만으로도 그 속삭임은 간단히 묻힙니다. 그래서 다른 통신은 멀쩡한데 유독 GPS만 통화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겁니다. 받으려는 신호가 약할수록 작은 방해에도 무너지니까요.

📐 조금 더 깊이 알고 싶다면 — 왜 하필 그 조합이 자주 문제인가 👉 클릭하면 펼쳐집니다

GPS가 쓰는 주요 주파수는 1575메가헤르츠입니다. 그 절반은 787메가헤르츠죠. 그런데 넓은 지역을 덮는 낮은 대역 통신 중에, 폰이 내보내는 쪽(상향)이 바로 그 언저리인 대역이 있습니다. 그러니 그 대역으로 송신하면 2배 자리가 GPS 위에 그대로 올라앉습니다.

여기서 하나 짚어둘 것이 있습니다. 낮은 대역이면 다 그런 게 아닙니다. 같은 낮은 대역이라도 상향이 700메가헤르츠 초반대인 곳이라면 2배는 1400메가헤르츠 언저리라, GPS와 140메가헤르츠 넘게 떨어져 있습니다. 문제가 되는 건 2배가 하필 그 자리에 정확히 떨어지는 특정 대역입니다. 그래서 “낮은 대역이라서”가 아니라 “그 대역이라서”가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낮은 대역으로 세게 송신하면, 그 2배 하모닉이 GPS 수신을 정면으로 칩니다. GPS 신호가 워낙 약해서, 아주 작은 하모닉에도 묻히죠. 이건 우연이 아니라 주파수가 배수 관계로 겹친 결과라, 그 조합에서는 예정된 것처럼 나타납니다.

다만 앞서 말했듯 모든 경우가 이렇진 않습니다. 어떤 폰은 다른 밴드에서, 다른 조건에서 GPS가 흔들립니다. 디센스는 늘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 그 폰에서 어느 조합이 범인인지는 실제로 돌려봐야 압니다.

그 배수만 콕 집어 없앤다 — 노치 필터

통과시켜야 할 통화 신호는 그대로 두고 GPS 자리에 떨어지는 하모닉 한 지점만 아주 깊게 눌러 없애는 노치 필터의 동작을, 특정 주파수만 좁고 깊게 파인 곡선으로 나타낸 개념도
통과시킬 신호는 두고, GPS를 치는 그 배수 한 점만 좁고 깊게 눌러 없앤다. 이것이 노치 필터다.

그럼 어떻게 잡을까요. 필터로 그 하모닉을 걸러내면 되는데, 여기서 요령이 필요합니다. 통화 신호는 그대로 내보내야 하고, GPS를 치는 그 배수만 없애야 하니까요.

그래서 노치(notch) 필터를 씁니다. 대역 전체를 막는 게 아니라, 특정 주파수 한 점만 좁고 깊게 눌러 없애는 필터입니다. 마치 빗의 이 하나가 빠진 것처럼, 딱 그 자리만 콕 집어 떨어뜨리죠. 통과시킬 신호는 건드리지 않으면서, GPS를 괴롭히는 하모닉만 도려냅니다. 실제로 이런 조합이 문제가 되는 밴드에는 이 노치를 따로 설계해 넣습니다.

📐 조금 더 깊이 알고 싶다면 — 노치 하나를 넣는 게 왜 간단치 않나 👉 클릭하면 펼쳐집니다

노치 필터도 공짜는 아닙니다. 그 자체가 신호가 지나는 길목에 놓이는 부품이라, 지날 때 약간의 손실이 생기고 자리도 차지합니다. 그러니 정말 필요한 밴드에만 골라 넣습니다.

어느 밴드가 GPS를 치는지, 얼마나 깊게 눌러야 하는지는 그 폰에서 실제로 재봐야 압니다. 배치와 격리를 손봐서 될 때도 있고, 그걸로 부족하면 노치를 넣습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병행해 잡는 그 과정의 일부죠.

이런 판단 — 어느 조합이 문제이고, 배치로 잡을지 노치로 잡을지 — 은 완제품에서 통신과 GPS를 함께 놓고 보는 사람만 내릴 수 있습니다. 통신 부품 회사도, GPS 부품 회사도 자기 것만 봐서는 이 궁합을 잡지 못합니다.

그래서 알아두면 좋은 것

  1. 통화 중에만 내비가 헤매면, 앱보다 수신 방해를 의심한다. 통화를 끊거나 스피커폰으로 바꿔보면 차이가 느껴질 수 있습니다.
  2. 중요한 길안내 중에는 긴 통화를 피한다. 특히 신호가 약해 출력이 최대로 올라간 상황이면, 하모닉도 세져 GPS를 더 세게 칩니다.
  3. 손으로 안테나를 덮지 않게 쥔다. 손이 출력을 올리게 만들면 GPS 방해도 커질 수 있습니다.
  4.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유지한다. 특정 조건의 GPS 감도는 출시 뒤 조정으로 개선되기도 합니다.

정리하면

통화하면서 내비가 헤매는 건 내 폰의 송신이 GPS 수신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강한 송신의 2배 하모닉이 하필 GPS 자리에 떨어지는 조합이 있습니다. 낮은 대역이라서가 아니라, 상향이 787메가헤르츠 근처인 그 대역이라서입니다. 2배가 1575메가헤르츠, GPS 자리에 그대로 올라앉으니까요. GPS 신호가 워낙 약해 작은 방해에도 묻히고요.

이걸 잡으려고 그 배수만 콕 집어 없애는 노치 필터를 설계해 넣습니다. 통과시킬 신호는 두고 문제의 한 점만 도려내는 거죠. 어느 밴드가 범인이고 어떻게 잡을지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 완제품에서 통신과 GPS를 함께 보는 사람만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걸로 폰 안에서 방해가 일어나는 대표적인 경로들을 한 바퀴 돌아봤습니다. 내 송신이 GPS를 치는 경우, 폰 안 다른 부품이 잡음을 내는 경우, 꽂는 선이 통로가 되는 경우까지요. 다음 글부터는 조금 다른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 부품 하나하나를 고를 때 부딪히는 원가와 공간 이야기입니다.

궁금한 통신 현상이 있으시면 문의 페이지로 보내주세요. 좋은 질문은 그대로 다음 글이 됩니다.


글쓴이 | 전파쟁이
스마트폰의 RF 프론트엔드(RFFE)를 12년째 설계하고 있습니다. 안테나 뒤에 붙는 필터·PA·LNA 같은 부품을 고르고 회로를 설계해서, 부품과 모듈이 합쳐진 완성된 폰 상태에서 실제로 성능이 나오는지 확인하는 일입니다. 이 블로그는 소속 회사와 무관한 개인 공간이며, 3GPP 공개 표준과 직접 측정한 데이터를 근거로 씁니다. 블로그 소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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