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휴대폰 안에서 신호가 지나가는 길을 지도 한 장으로 그렸습니다. 오늘은 그 지도에서 가장 뜨겁고 가장 배고픈 부품 하나를 꺼내보려고 합니다.
PA입니다. 우리말로는 전력 증폭기라고 부릅니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입니다.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물건이 몇 km 떨어진 기지국까지 목소리를 보냅니다. 건물을 몇 개나 지나서요. 그 일을 하는 게 PA입니다. 그런데 이 부품은 있는 힘껏 쏘지 않습니다. 늘 여유를 남겨두고 일합니다.
왜 그럴까요. 오늘 이야기는 거기서 시작합니다.
먼저 흔한 오해부터
❌ “출력을 세게 올리면 더 잘 터진다”
맞는 말 같지만 절반만 맞습니다. 출력을 올리면 신호가 멀리 가는 건 사실입니다. 문제는 올릴 수 있는 한계가 생각보다 훨씬 낮은 곳에 있다는 점입니다. 폰은 지금도 필요할 때는 이미 올리고 있습니다. 다만 그 위로는 올리면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 “PA는 볼륨 손잡이 같은 것이다”
돌리는 만큼 커지는 손잡이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증폭기는 어느 지점까지만 정직합니다. 그 지점을 넘으면 더 넣어도 더 나오지 않고, 대신 엉뚱한 것이 같이 나옵니다. 오늘 글의 핵심이 여기입니다.
❌ “PA 하나면 모든 주파수를 처리한다”
PA는 맡은 주파수 범위가 정해져 있는 부품입니다. 그래서 요즘 폰에는 PA가 여러 개 들어갑니다. 해외 직구폰이 국내에서 안 터지는 문제도 여기서 출발하는데, 이건 다음 글에서 따로 다루겠습니다.
PA가 하는 일 — 힘을 싣는다
먼저 자리를 확인하겠습니다. 지난 글의 지도에서 내보내는 쪽, 그러니까 Tx 경로를 보면 순서가 이렇습니다.
모뎀 → 트랜시버 → PA → 듀플렉서 → 안테나
트랜시버가 만들어낸 신호는 대단히 작습니다. 그 상태로 안테나에 보내봐야 몇 미터도 못 갑니다. 이 작은 신호를 건물 몇 개를 지나 기지국까지 닿을 크기로 키우는 것이 PA의 일입니다.
얼마나 키울까요. 통신 규격이 정해놓은 휴대폰의 최대 송신 출력은 일반적으로 23dBm입니다. 와트로 바꾸면 약 0.2W, 200mW 정도입니다.
숫자만 보면 작아 보입니다. 요즘 흔한 LED 전구 하나가 5W쯤 되니, 그 25분의 1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 이 0.2W가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는 전파라는 점이 다릅니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세기는 급격히 줄어들어서, 기지국에 도착할 즈음이면 처음의 1조 분의 1도 안 되는 크기가 됩니다. 지난 글에서 폰이 내보내는 신호와 받는 신호의 차이를 2조 배라고 했는데, 그만한 격차가 거리를 지나는 동안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상태에서도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하니, 출발할 때만큼은 확실하게 실어 보내야 합니다.
그런데 증폭기는 어느 지점까지만 정직합니다

가로축은 PA에 넣는 신호, 세로축은 안테나로 나가는 신호입니다.
왼쪽 초록 구간을 보면 넣는 만큼 정직하게 나옵니다. 두 배를 넣으면 두 배가 나옵니다. 증폭기가 제대로 일하는 구간이고, 이걸 선형 구간이라고 부릅니다. 직선(line)에 가깝게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오른쪽입니다. 어느 지점부터 곡선이 이상적인 직선에서 아래로 휘기 시작합니다. 더 넣어도 나오는 양이 그만큼 늘지 않습니다. 이걸 압축이라고 하고, 더 밀어붙이면 결국 아예 늘지 않는 지점에 도달합니다. 그게 포화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덜 나온다”가 문제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덜 나오는 것만으로 끝나면 차라리 낫습니다.
진짜 문제는 신호의 모양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들어온 신호와 같은 모양으로 커져야 하는데, 봉우리 부분만 눌리면서 윤곽이 찌그러집니다. 그림에서 이상적인 직선과 실제 곡선이 벌어지는 만큼, 나가는 신호의 모양도 원래와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 어긋남이 왜곡입니다. 그리고 찌그러진 파형은 원래 없던 주파수 성분을 만들어냅니다. 깨끗한 소리는 한 음으로 들리지만 찢어진 소리에는 온갖 잡음이 섞여 있는 것과 같습니다. 새로 생긴 그 성분들이 내 채널 바깥으로 번져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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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지점부터 휘기 시작한다”는 말은 애매합니다. 곡선은 부드럽게 휘니까요. 그래서 현장에서는 기준점 하나를 못 박아 두고 이야기합니다.
1dB 압축점(P1dB)입니다. 이상적인 직선대로라면 나왔어야 할 값보다 실제 출력이 1dB 모자라지는 지점을 말합니다. 1dB는 약 20% 줄어든 크기입니다. 크지 않아 보이지만, 이 정도면 이미 곡선이 눈에 띄게 휜 상태입니다.
여기서 오해하기 쉬운 게 하나 있습니다. P1dB가 “여기까지는 써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P1dB는 부품끼리 성능을 비교하고 이야기를 나누기 위한 눈금이지, 거기까지 밀어붙여도 된다는 허가선이 아닙니다. 실제 설계에서는 그보다 한참 아래에서 씁니다. 이렇게 일부러 여유를 남기고 쓰는 것을 백오프(back-off)라고 합니다.
얼마나 물러설지는 신호의 성격이 정합니다. 옛날 음성 통화처럼 세기가 일정한 신호라면 덜 물러서도 됩니다. 하지만 요즘 데이터 통신 신호는 순간순간 세기가 크게 출렁입니다. 평균은 낮아도 순간적으로 튀는 봉우리가 있고, PA는 그 봉우리까지 왜곡 없이 통과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평균 출력은 한참 낮은데도, PA는 훨씬 큰 출력을 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대기해야 합니다. 봉우리를 위해 남겨두는 이 여유가 PA를 크고 비싸고 뜨겁게 만드는 주된 이유입니다.
덧붙이면 앞에서 말한 23dBm이 모든 경우에 고정된 값은 아닙니다. 규격은 단말을 출력 등급으로 나눠두고 있고, 대부분의 폰과 밴드가 쓰는 등급의 기준이 23dBm입니다. 다만 일부 대역에서는 커버리지를 넓히기 위해 한 등급 높은 26dBm까지 허용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만큼 PA가 더 일하고 더 뜨거워지니,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닙니다.
왜곡은 남의 자리로 넘어갑니다
여기가 이 글에서 제일 중요한 대목입니다.
압축이 만들어낸 왜곡은 내가 쓰는 주파수 안에만 생기지 않습니다. 상당 부분이 내 채널 바깥, 그러니까 양옆 주파수로 번져 나갑니다.

가로축이 주파수입니다. 가운데 파란 구간이 내가 지금 쓰는 채널이고, 양옆 회색 구간은 다른 사람이 쓰고 있는 채널입니다.
왼쪽은 여유를 두고 쓸 때입니다. 신호가 내 채널 안에 얌전히 머물러 있습니다. 옆으로 조금 새기는 하지만 규격이 그어놓은 선보다 한참 아래입니다.
오른쪽은 끝까지 밀어붙였을 때입니다. 봉우리는 별로 높아지지도 않았는데, 양옆으로 넓게 번져 옆 채널을 완전히 덮어버렸습니다. 규격선도 훌쩍 넘었습니다.
여기서 옆 채널을 쓰고 있는 건 남입니다. 옆자리에서 통화 중인 다른 사람일 수도 있고, 아예 다른 통신사일 수도 있습니다. 내 폰이 출력을 무리하게 올리면 내 신호가 그 사람의 통신을 방해합니다.
그래서 통신 규격은 “옆 채널로 새어 나가는 양이 얼마 이하여야 한다”는 조건을 정해두고 있습니다. 이걸 인접 채널 누설이라고 부릅니다. 폰은 이 조건을 통과하지 못하면 애초에 시장에 나올 수 없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출력을 못 올리는 이유는 PA의 힘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더 밀어붙일 수는 있습니다. 다만 그렇게 하면 내 신호가 지저분해지고, 그 지저분함이 남에게 넘어가기 때문에 스스로 멈추는 것입니다.
그래서 PA는 늘 뜨겁습니다
PA가 하는 일을 다르게 표현하면, 배터리에서 꺼낸 전기를 전파로 바꾸는 일입니다. 그런데 꺼낸 전기가 전부 전파가 되지는 않습니다. 전파가 되지 못한 나머지는 고스란히 열이 됩니다.
여기서 앞의 이야기가 다시 걸립니다. 선형성을 지키려고 여유를 남겨둔 상태는 효율이 나쁜 상태이기도 합니다. 신호를 깨끗하게 내보내려고 물러설수록, 같은 크기의 신호를 내보내면서도 전기를 더 많이 쓰고 열도 더 많이 냅니다.
깨끗함과 효율이 지난 글의 격리도와 삽입손실처럼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둘 다 가질 수는 없고, 어디쯤에서 타협할지를 정하는 것이 설계입니다.
신호가 약한 곳에서 폰이 뜨거워지고 배터리가 빨리 닳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기지국이 멀면 폰은 출력을 올려야 하고, 출력을 올리면 PA가 전기를 더 먹고 더 뜨거워집니다. 이 이야기는 온도와 배터리 글에서 자세히 다뤘습니다.
📐 조금 더 깊이 알고 싶다면 — 전압을 신호에 맞춰 따라가게 하기 👉 클릭하면 펼쳐집니다
앞에서 봉우리를 위해 여유를 남겨둬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봉우리는 가끔 옵니다. 대부분의 시간에 신호는 그보다 훨씬 작습니다.
문제는 PA에 일정한 전압을 물려두면, 신호가 작든 크든 늘 봉우리에 맞춘 전압이 걸려 있다는 점입니다. 작은 신호를 낼 때 남는 전압은 일을 하지 않고 열로만 빠집니다. 수도꼭지를 조금만 열 건데 수압을 계속 최대로 올려두는 셈입니다.
그래서 나온 방법이 공급 전압 자체를 신호에 맞춰 움직이는 것입니다. 두 단계로 발전했습니다.
먼저 APT(평균 전력 추적)입니다. 지금 폰이 어느 정도 세기로 송신하는지에 맞춰 전압을 단계적으로 조절합니다. 약하게 쏠 때는 전압을 낮추고, 세게 쏠 때만 올립니다. 신호 하나하나를 따라가지는 않고 평균 수준에 맞추는 방식입니다.
더 나아간 것이 ET(포락선 추적, Envelope Tracking)입니다. 이쪽은 신호의 출렁임 자체를 실시간으로 쫓아갑니다. 신호가 봉우리로 치솟는 순간에만 전압을 올리고, 골짜기에서는 곧바로 내립니다. 신호의 윤곽선을 전압이 그대로 따라 그리는 모습이라 포락선 추적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하면 남는 전압이 크게 줄어듭니다. 선형성은 지키면서 열은 덜 내는, 앞에서 말한 타협의 지점을 통째로 옮기는 방법입니다. 다만 공짜는 아닙니다. 빠르게 출렁이는 신호를 전압이 지연 없이 따라가게 만드는 일 자체가 까다롭고, 그 전압을 만들어주는 전용 부품이 따로 들어갑니다.
이런 사정도 PA가 단품보다 모듈 형태로 들어가게 된 이유 중 하나입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지난 글에서 본 것처럼 자리와 손실 문제지만, ET처럼 주변 부품과 호흡을 맞춰야 제 성능이 나오는 동작들이 늘어난 것도 한몫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뭘 할 수 있을까
PA의 부담을 줄여주는 방향이면 배터리와 발열 모두에 이득입니다.
- 신호가 약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기. 지하 주차장이나 엘리베이터 앞처럼 신호가 나쁜 자리에서는 PA가 계속 최대에 가깝게 일합니다. 자리를 몇 걸음 옮기는 것만으로 부담이 크게 줄어듭니다.
- 큰 파일 전송은 신호 좋은 곳에서. 클라우드 백업이나 동영상 업로드처럼 오래 계속 내보내는 작업일수록 차이가 큽니다. 신호가 나쁜 자리에서 하면 같은 일에 배터리를 훨씬 많이 씁니다.
- 통화 중에 안테나 부근을 감싸 쥐지 않기. 손이 안테나를 가리면 내보낸 신호가 제대로 나가지 못하고, 폰은 그만큼 출력을 더 올려서 메우려 합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손으로 쥐면 신호가 나빠지는 글에 있습니다.
- 폰이 뜨거울 때는 두꺼운 케이스를 잠깐 벗기기. PA가 만든 열은 기판과 프레임을 타고 밖으로 빠져나갑니다. 그 길이 막히면 폰은 스스로 성능을 낮춰서 열을 줄이려 합니다.
- 신호 증폭 스티커 같은 것은 사지 않기. 신호를 키우는 일은 전원을 먹는 부품이 하는 일입니다. 전원도 회로도 없는 스티커가 출력을 만들어낼 방법은 없습니다.
정리하면
PA는 폰 안에서 신호에 힘을 실어 기지국까지 보내는 부품입니다. 규격이 정한 최대 출력은 일반적으로 23dBm, 약 0.2W입니다.
이 부품이 있는 힘껏 쏘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어느 지점을 넘으면 더 넣어도 더 나오지 않고 대신 왜곡이 생기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그 왜곡이 옆 채널로 번져 남의 통신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폰은 늘 한계보다 물러선 자리에서 일합니다.
그 물러선 자리가 열과 배터리 소모로 돌아옵니다. 깨끗하게 보내려면 여유가 필요하고, 여유는 효율을 깎습니다. 이 사이에서 어디에 설지를 정하는 일이 제가 12년째 하고 있는 일의 상당 부분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내 폰이 왜 특정 주파수를 못 쓰는지를 다루겠습니다. 오늘 “PA는 맡은 주파수가 정해져 있다”고 했는데, 그 말이 실제로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해외 직구폰이 안 터지는 이유가 가장 흔한 사례이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해결되지 않는 이유도 함께 설명하겠습니다.
궁금한 통신 현상이 있으시면 문의 페이지로 보내주세요. 좋은 질문은 그대로 다음 글이 됩니다.